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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DIVE

왜 자꾸 미루게 될까?

읽는 시간 약 8분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지금은 하기 싫은 이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오늘 안에 해야 하고,
미루면 결국 내가 더 힘들어진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는다.

‘조금만 있다가 해야지.’

휴대폰을 잠깐 보고,
물 한 잔을 마시고,
괜히 다른 일을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시간이 많이 지나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제야 급하게 시작한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미룰까?”

미루는 습관을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루기는 단순히 게으르거나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행동만은 아니다.

어떤 일을 앞에 두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그 일을 지금 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당장 눈앞에 있는 다른 것들이 함께 영향을 줄 수 있다.

하기 싫은 일은 시작하기 전부터 무겁다

같은 한 시간이라도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좋아하는 영상을 보는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가는데,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하는 한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보고서를 써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고,
정리해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조금 피곤하다.

미루기 연구에서는 이런 일 자체가 얼마나 부담스럽고 하기 싫게 느껴지는지(task aversiveness)가 미루기와 관련된 중요한 요인으로 반복해서 언급되어 왔다.

그러니까 일을 미루는 순간에는

‘하기 싫으니까 나중에 해야지.’

라는 단순한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이 일을 시작하면서 느끼게 될 불편함을 잠시 피하고 싶은 마음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휴대폰은 그렇게 쉽게 손이 갈까

해야 할 일을 미뤄놓고 휴대폰을 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보다
당장 즐거운 일이 더 쉽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끝내야 결과가 나온다.

공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성취감을 느낀다.

하지만 짧은 영상이나 메시지는
지금 바로 작은 보상을 준다.

이런 차이는 미루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연구에서는 과제에 대한 부담감뿐 아니라 보상이 얼마나 먼 미래에 있는지, 그리고 당장의 유혹이나 충동성이 행동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지금 해야 하는 일’

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

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생긴다.

미루기는 때때로 미래의 나보다
지금의 나를 먼저 편하게 해주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미루고 나면 잠깐 편해지는 이유

미루기를 하면 당장은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해야 할 일을 잠깐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나중에 하자.’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지금 느끼던 부담도 잠시 사라진다.

문제는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생각난다.

‘아, 이것도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불편함을 피하려고 미뤘는데,
나중에는 미룬 일 때문에 또 불편해진다.

이런 과정 때문에 연구에서는 미루기를 당장의 불편한 감정을 줄이려는 행동과 연결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특히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에서는 어려운 일에서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는 방식으로 미루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점도 제시되어 있다.

그러니까 미루기는

‘해야 하는 걸 몰라서’

생기는 행동이라기보다,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느끼는 부담을 잠시 피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마감이 가까워지면 갑자기 할 수 있는 이유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기 싫었던 일이
마감 전날이 되면 갑자기 할 만해진다.

왜 그럴까.

일이 갑자기 쉬워진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이 달라졌다.

마감이 멀리 있을 때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이유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감이 가까워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늘 안 하면 정말 곤란하다.’

미래의 결과가 갑자기 현재의 문제가 된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행동하려는 동기가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 미루기를 설명하는 주요 이론 중 하나다.

그래서 마감 직전에 갑자기 집중력이 생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은 집중력이 갑자기 생겼다기보다,

미루는 것보다 지금 하는 편이 더 중요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미루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미루는 일이 반복되면
자신을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나는 원래 게을러.’
‘나는 의지가 약해.’
‘나는 왜 이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하지?’

그런데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다음 행동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한 번 미룬 자신을 탓하면서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

미루기는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 원인을 하나의 성격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연구에서도 자기통제, 충동성, 과제에 대한 부담감, 자기효능감 등 여러 요인이 함께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미루는 사람이야.’

라고 결론 내리기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특히 미루는 걸까?’

라고 묻는 편이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든 일을 똑같이 미루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어떤 일은 바로 하는데
어떤 일은 계속 미룬다.

친구에게 답장하는 건 금방 하면서
메일 한 통은 며칠씩 미룰 수도 있다.

운동은 내일부터라고 생각하면서
좋아하는 약속은 바로 나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순히
‘내가 일을 싫어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지,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결과를 얻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에 따라
행동하기까지의 마음도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미루는 습관을 바꾸고 싶다면
‘더 부지런해져야지’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어떤 일을 가장 많이 미루는지부터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덜 미룰 수 있을까

미루는 습관을 없애려고 하면
처음부터 너무 큰 목표를 세우기 쉽다.

‘앞으로는 절대 미루지 말아야지.’

하지만 이 말은 생각보다 어렵다.

대신 시작해야 할 일을 작게 만들어볼 수 있다.

‘보고서를 쓴다’가 아니라
파일을 연다.

‘공부를 한다’가 아니라
문제 하나만 푼다.

‘방을 정리한다’가 아니라
책상 위에 있는 것 하나만 치운다.

일을 작게 나누면
시작하기 전에 느끼는 부담도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이유가 너무 약하다면
언제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정해두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의욕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기 어렵지 않은 크기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건 정말 그럴까?

‘미루는 사람은 그냥 의지가 약한 걸까?’

정말 그럴까.

궁금해서 관련 연구를 찾아보았다.

미루기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이야기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일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정도,
결과를 얻기까지 걸리는 시간,
자기통제와 충동성,
그리고 지금 느끼는 감정을 조절하는 방식까지
여러 요인이 미루기와 관련되어 있었다.

특히 최근 연구들을 보면
미루기와 부정적인 감정 사이에도 관련성이 확인되고 있지만,
둘 중 하나가 항상 다른 하나의 원인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2025년 메타분석에서도 미루기와 우울·불안·스트레스 같은 부정적 감정 사이에 중간 정도의 상관이 확인되었지만, 연구에서는 양방향 관계의 가능성도 함께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미루는 건 의지가 약해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궁금해서 찾아봤고,
찾아보니 미루는 행동 뒤에는
생각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숨어 있을 수 있었다.

관련 연구

한 가지 기억할 것

미루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게으른 사람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일은 너무 부담스러워서 미루고,
어떤 일은 지금 당장 해야 할 이유가 약해서 미루고,
어떤 일은 시작하는 순간 느낄 불편함을 피하고 싶어서 미룰 수도 있다.

그러니 다음에 또 일을 미루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왜 또 이러지?’

라고 묻기 전에

‘내가 지금 피하고 싶은 건 이 일일까, 아니면 이 일을 하면서 느낄 감정일까?’

라고 한번 물어봐도 좋을 것 같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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